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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밤늦은 시간에 깨있던 날을 기억합니다. 집이 엄한터라 9시면 언제나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하루의 끝은 9시인줄만 알았던 어린나이의 시간들 이후- 내 방이 생겼던 어느 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집 구석에 굴러다니는 '여자의 남자' (후에 이 저자가 국회의원이라는걸 알았을 때 어찌나 신기하던지!) 를 읽으며 늦은 시간까지 깨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걸리면 혼날 것이 분명했기에 촛불을 켜고 소설을 읽었지요. 딸랑 1권뿐이라 스토리도 맥락도 몰랐지만, 정말 야한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거기 나오는 사타구니, 음부 뭐 이런단어들은 뜻도 모르겠지만 그저 깊은 세계라고 생각했지요. 역시 집에 처박혀 있던 두꺼운 사전을 들고 단어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흥분된 시간을 느꼈던 그때는 정말 꼬맹이였습니다. (어릴때부터 호기심이 겁나 많았던걸요!) 그 뒤로 밤에 종종 깨있었고 대게는 소설을 읽거나 라디오를 켜놓고 살았습니다. 학창시절이라고 해야하나 . 그때는 음악도시, 0시의 째즈, 영화음악, 월드뮤직 뭐 이런 순서로 심야 라디오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잊을 수 없는건 역시 '고스트스테이션' (그때는 다른 이름이었을거에요) 의 신해철의 목소리였죠. 저는 그 사람의 음악은 잘 몰라도 그의 목소리는 꽤 좋아했습니다. 밤에 듣기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막상 지금은 비슷한 일을 해보니 그렇게 막나가는 방송을 하는 '내공' 도 엄청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부터였나요. 밤이되면 사람이 미친다고 생각했어요. 그 밤이라는 마력은 사람을 가만두지를 않더군요. 외롭게 만들고, 달을 보고 싶게 만들고, 뛰쳐나가야 할 것 같고, 뭔가에 빠져들어야만 했습니다. 밤에 깨있는게 일상이 되는 지금도 밤과 낮의 다른 모습은 나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얼마전 집에 들어오는데, 왠 남자가 말을 걸더군요. 친해지고 싶다고. 남들이 말하는 '헌팅' 이겠죠. 원채 성격이 거절하는 편은 못되고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하는 일도 있는데다 원래 자취하는 집도 아니고 가족들 집 앞이라 그냥 몇 마디 대꾸하다가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번호 를 찍어주고 들어와버렸습니다. 우연이도 밧데리가 나가 핸드폰은 꺼졌고 잊어버렸지요. 오늘 문자가 왔네요. 야속한 그대 잘있냐는 식의 문자입니다. "연락을하기도하는군요" 라는 답문을 하나 보내준뒤 씹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은 '영어를 잘한다' 라는 장점을 어필하려고 한것 같은데 그냥 '나도 중학교 애들 가르쳤었다' 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런 외모가 아니어서 의외라는 반응을 보일거라고 짐작도 했구요. 사실 뭐 더이상 "외모=그 사람의 수준" 인 세상은 아니라고 해도, 종종 이런 상황이 있어요. 아니 그 반응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인간이 저죠-_-; 그 사람도 밤이어서 외로웠나봅니다. 만약 신이라는게 있다면, 신이 만든 가장 훌륭한 것은 '밤이라는 자연' 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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